도시 속 탐험하기

도쿄의 히트상품 미드타운 탐방기 2007/06/14

딸기21 2018. 6. 11. 14:39

롯폰기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미드타운은 한마디로 6개 빌딩으로 이뤄진 복합공간입니다. 사무용 빌딩들과 쇼핑센터, 식당가, 그리고 호텔과 주거용 빌딩, 여기에 문화시설이 합쳐진 곳입니다. 한 곳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고 일하는 것을 모두 합쳐놓은 것인데, 요즘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아주 보편적인 부동산 개발 방식이지요.


이 곳은 원래 일본 방위청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 방위청이 옮겨가면서 이 땅을 민간에 매각할 때 미쓰이부동산이 다른 여러 생명보험사 등과 함께 팀을 이뤄 사들여서 개발했습니다. 전체 면적은 10.2 헥타아르, 약 10만2000제곱미터 쯤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흔한 이런 도심 복합공간을 왜 일본까지 취재를 갔냐구요? 바로 그게 이번 출장의 포인트였습니다. 미드타운같은 최신 사례를 통해 일본식 재개발의 강점과 경쟁력을 알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자, 미드타운의 전경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6개 건물들이 모여서 하나의 단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빌딩이 미드타운 타워입니다. 높이는 54층 248미터로 현재 도쿄에서 가장 높은 빌딩입니다.(참고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도쿄가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인천이라고 할 수 있는 요코하마에 있습니다. 요코하마의 ‘랜드마크 타워’란 빌딩으로 70층짜리입니다.)



이 미드타운은 빵빵한 광고에 힘입어 3월30일 개장 이후 방문객이 한달 만에 400만명을 넘길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4월말에서 5월초로 이어지는 일본의 황금 연휴인 이른바 ‘골든 위크’ 기간에만 무려 150만명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추세라면 미드타운이 내건 연간 방문객 목표인 3000만명은 어렵잖게 돌파할 것으로 미드타운쪽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미드타운 광보(홍보) 총괄 가미야 마사키씨는 “일단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아주 만족스럽다고 자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연간 3000만명! 이게 실로 대단하리란 것은 막연하게 느껴지시겠지만,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감이 잘 오지 않으실겁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테마파크인 에버랜드 연간 방문객이 800만명대입니다. 우리나라 전국 12개 테마파크 전체 연간 입장객은? 2006년 모두 2316만명이었습니다. 놀이공원도 아니고 조금 크고 새로운 빌딩 겸 상업공간인 미드타운 하나가 우리나라 전체 놀이공원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라는 이야깁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 이유를 따져보겠습니다. 일단 미드타운을 한번 둘러보시지요.


사진에서 보셨듯 미드타운은 앞에서 보면 거대한 빌딩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그 옆으로 가보면 다른 빌딩과 다른 점이 나옵니다. 미드타운이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가장 차별적인 자산으로 내세우는 것, 바로 도심속 녹지대입니다.


미드타운 옆에 나있는 녹지대 겸 도로입니다.



저 가운데 심은 나무들은 벚나무입니다. 일본이 가장 사랑하는 사쿠라죠. 그런데 이 나무들은 새로 심은 것들이 아닙니다.


그럼 원래 있던 것이냐구요? 그렇습니다. 원래 이 방위청 부지에 있던 나무들입니다. 미드타운쪽은 원래 있던 나무들 싹 밀어내고 새로 조경한 뒤 다시 새 나무 사서 심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나무들 가운데 좋은 것들을 추려서 이를 옮겨 심은 것도 미드타운 개발의 또다른 자랑거리라면서 저에게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들을 고르는 사람까지 따로 고용해서 추려냈다고 합니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가미야씨는 “땅의 역사를 기억하는 개발”이 주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뭐, 의미부여하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고, 제가 보기에도 괜찮다 싶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아주 넓은 녹지대가 나옵니다. 빌딩 숲 뒤에 이런 넓고 탁트인 공간이 어떻게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이 공원 부지가 전체 면적의 40%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금싸라기 땅을 개발하며 거의 절반을 녹지로 삼은 것, 이게 미드타운의 강점이자 차별점이라는 자랑이 과장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중간에는 잔디밭이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조형물도 독특합니다. 이 잔디밭은 물론 너른 공간으로 시민들과 방문객의 쉼터가 되지만 ‘방재용’ 용도도 있다고 합니다. 비상시에 헬기가 뜨고 내리는 이착륙장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 공원에는 가족 단위 산책객들을 위한 어린이 놀이기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그네와 미끄럼틀이 아니라 디자인을 가미해 조형물로 꾸몄습니다.



이 놀이터를 넘어가면 도쿄 도의 재산인 히노키초 정원이 나옵니다. 미드타운의 녹지대 공원과 이어져 한 몸을 이루게 되어 녹지가 더 넓어지는 효과를 냅니다. 일본 옛 유명한 무사의 정원이었는데 이제는 시민의 휴식지로 바뀐 곳입니다.



그러나 관광객들이나 방문객들에게는 이런 편안한 외부 녹지 이상으로 내부의 개성적인 상점들, 그리고 쇼핑의 매력이 미드타운을 찾아오는 이유가 될 겁니다. 본질적으로 미드타운은 방문객들에겐 역시 ‘괜찮고 독특한 쇼핑센터’일테니까요.


지하철로 미드타운에 들어서면 우선 하얀 돌조각이 손님을 맞습니다. 그리고 이 돌조각 이후로 쇼핑공간이 펼쳐집니다. 중간이 뻥 뚫린 구조로 된 4개 층이 쇼핑 공간입니다.


미드타운 점포들은 모두 ‘도시의 고급스런 일상’을 주제로 구성했다고 합니다. 이런 주제에 맞게 특화한 가게들을 골라 유치, 입주 시켰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최고급 또는 고급 제품들 일색이긴 하지만 결코 명품 브랜드 위주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급이긴 하지만 어디에서나 똑같은 아이템을 파는 명품 브랜드는 피하고 이곳에서만 파는 물건을 다루는 점포를 우선했습니다. 굳이 이 미드타운까지 오게 만들고자하는 전략입니다.


미드타운은 또한 쇼핑공간 전체를 목조 인테리어로 통일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개별 브랜드들도 이곳의 인테리어 흐름에 따르도록 했습니다. 빨강과 초록 보색 로고가 선명한 편의점 체인 세븐 일레븐도 여기서는 미드타운 식으로 다르게 꾸민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개방된 녹지공간, 그리고 개성적인 쇼핑공간 이상으로 미드타운을 잘 포장해주는 전략적인 장치가 따로 또 있습니다. 바로 미드타운에 입주해있는 다양한 문화 시설이나 공간들입니다.


미드타운은 개발 초기부터 이곳을 일본의 ‘디자인 발신지’로 만드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전문 전시장인 ‘2121 디자인 사이트’란 전시관을 녹지대에 만들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디자이너인 이세이 미야케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건물은 얼핏보면 개성적인 단층 건물같습니다. 그런데 아래로 땅 깊숙이 공간을 집어넣어 실제 겉모습보다는 훨신 큽니다. 옆 왼쪽은 카페도 들어있습니다.


이 건물은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것입니다. 안도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미학이 이 건물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내부는 전시장인데 동선이 아기자기해서 아주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던함을 극도로 추구한 화장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디자인 미술관 말고도 미드타운 타워에는 일본 산업 디자인계의 산학협동기관인 ‘디자인 허브’가 들어와 있습니다. 또한 아카사카에 있던 산토리 미술관도 이리로 옮겨왔습니다.


이 세가지 미술 및 디자인 관련 기관이 입주하면서 미드타운은 노린대로 단숨에 일본의 주요한 디자인 집결지이자 발신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건너편 롯폰기힐스에 있는 모리 미술관, 그리고 새로 문을 연 일본의 국립신미술관과 함께 롯폰기의 ‘아트 트라이앵글’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칙칙한 낡은 건물이 밀집해있고 유흥가로만 알려졌던 롯폰기는 새로운 문화지대로 이미지를 바꾸고 있습니다.


미드타운에서 인상적이었던 공간을 하나 더 꼽자면 대로변에서 미드타운 건물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련한 광장입니다. 넓은 중간 공간을 배치하고 높은 철골조 차양막을 하늘에 올려 시원한 개방감을 강조하면서도 그늘을 제공합니다. 쇼핑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제격이었습니다. 실제 평일 낮인데도 상당히 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미드타운은 분명 우리가 보아온 커다란 빌딩과 쇼핑센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미드타운과 일본의 다른 재개발 복합공간을 돌아보면서 재개발과 시민, 그리고 도시의 관계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미드타운은 틀림없이 물건을 더 효과적으로 팔고자하는 상업공간입니다. 그러나 서울의 비슷한 상업공간들과 비교해보면 분명히 더욱 편안하고 쾌적하고 개방적이며 시민친화적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비슷한 컨셉이지만 시각적 재미나 편안하게 쉴만한 공간, 녹지대라곤 전혀 없는 서울의 코엑스나 용산역 상가와 비교해보면 사소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상업지역에 디자인 센터와 미술관을 들여와 문화지대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획력, 미술품으로 고급스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연출력, 공간을 활짝 열어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만드는 점, 그래서 또 오게 만드는 힘, 뻔한 쇼핑센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해 외국 사람들을 오게 만드는 홍보력까지.


일본식 재개발이 우리의 정답은 분명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따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재개발은 우리보다 분명히 한 수 위인 것 같았습니다. 도심속에서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녹지대는 더더욱 도드라져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