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탐험하기

핑크 시티, 바람의 궁전에 가다 2009/03/06

딸기21 2018. 10. 10. 14:28

인도 라자스탄주의 주도인 자이푸르는 ‘핑크 시티’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도시 전체가 인도의 붉은 사암색깔로 통일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서울 델리, 그리고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와 함께 자이푸르는 인도 관광의 기본 3대 코스로 꼽힌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이란 세 도시다.


자이푸르를 굽어보는 자이가르성

 

핑크 도시 자이푸르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성 암베르, 그리고 폐허가 되었지만 그래서 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옛성 자이가르성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앞서 돌아본 암베르성을 뒤로 하고 바로 옆에 있는 또다른 성 자이가르로 향한다. 암베르가 화려하고 살아있는 성이라면, 자이가르는 낡고 죽은 성, 그러나 그래서 볼만한 폐허 유적이다.




황무지 민둥산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찻길로 자이가르성을 향해 올라간다. 길 옆으로는 원숭이들이 주렁주렁 키작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속리산 말티재같은 꼬부랑길을 몇바퀴쯤 돌았을까, 드디어 붉은 자이가르성의 입구에 도착한다. 인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뒤엉켜 제법 기다려야 한다. 

 



성의 외벽은 오래된 성 답게 세월의 흔적이 있기는 해도 멀쩡하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성 내부는 전체가 텅 비어 있다. 마치 커다란 폭탄이 떨어진 자리처럼 둘레 성벽만 남기고 움푹 패어 있는 모습이 실로 그로테스크할 정도다. 웅덩이처럼 패이지 않은 부분들도 모두 생활의 흔적이 일체 사라진 폐허로 남아 있다. 




자이가르성을 구경하는 것은 그래서 온전한 성벽을 따라 전망을 즐기는 것이 된다.




남쪽 성벽 전망대에서 다음 행선지인 핑크 시티 자이푸르가 저 멀리 보인다. 짙은 흙빛 능선 사이 펼쳐진 호수 옆으로 자이푸르가 있다. 




자이푸르 옆 호수 가운데 물위에 둥실 떠있는 돌 건물도 보인다. 




자이푸르 반대편 쪽으로는 시원하게 펼쳐지는 너른 라자스탄의 광야가 눈을 압도한다. 건조한 라자스탄의 땅은 거칠고, 척박하다. 가끔 높은 산들이 솟아오르지만 높은 곳에 오르면 끝이 안보이는 지평선뿐. 저 아득한 지평선쪽으로부터 쳐들어올 적들을 감시하는 성벽도 거친 라자스탄의 흙빛 그대로다. 적들을 막는 돌성벽이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능선위로 이어진다. 




방금 전 들렀던 아름다운 암베르성도 한 눈에 들어온다. 아래 사진 왼쪽 아래 계란 노른자빛 건물이 암베르성이다.

 



자이가르성의 아름다움은 보기 좋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오랜 세월 이 산등성이에서 버티며 자연속에서 인공물로서 살아남은 그 모습 자체다. 사람이 세운 성은 이제 자연으로 돌아간듯 자연속에서 폐허로 남았다. 기능을 잃어버린 공간, 있어야 할 것들이 사라진 공간, 그래서 죽은 공간은 비현실적이어서 아름답다. 우리 생활속에서 좀처럼 접할 수 없는 공간이어서 더욱 묘하게 다가오는 아름다움이다.

 

이제 핑크 시티로

 

그리고, 자이가르를 떠나 자이푸르로 향한다. 다시 굽이 고갯길을 돌아 내려 자이푸르로 가는 길, 호수가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호수 자체의 경관은 아름답지만 빼어나지는 않다. 호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주변 풍경보다는 그 위에 떠있는 저 건물이다.

 



인도와 중국의 공통점일까? 호수 위에 저런 인공 건물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듯하다. 인도의 호수에는 저런 건물들이 많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007 영화 <옥토퍼시>에 나온 호반의 수상 건물 타즈 레이크 호텔이다. 저 건물은 물론 그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다른 곳에선 쉽게 볼 수 없는 풍광을 제공한다.


저 호수를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자이푸르 시내로 들어간다. 한 주의 주도이긴 하지만 델리에 비하면 거의 소읍 수준이다. 더 낡고, 더 더럽다. 인도 어디에 가나 많은 새들.

 



자이푸르에서 유명한 천문대부터 들렀다. 자이푸프의  지배자 카츠츠와하 왕조의 왕 자이싱 2세가 만든 곳이다. 천문대의 이름은 잔타르 만타르. 고유명사가 아니라 천문대란 뜻의 일반명사로, 여러 도시에 이 잔타르 만타르가 있다. 



그 중에서 이곳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가 가장 유명한 것은 규모가 제일 크기 때문이다. 크기는 다르지만 별자리 궁도를 관찰하는 기구처럼 생긴 구조물들이 별자리별로 설치되어 있고, 별들의 궤적을 추적하는 반원형 기구들이 많다. 보는 이들이야 그 용도를 짐작하기 어렵고, 오히려 추상적인 현대 조형물처럼 세련되게 보인다. 

 



자이푸르는 크지 않은 도시이고, 명소도 다들 중심부에 몰려있다. 잔타르 만타르 바로 옆에 도시의 상징인 ‘시티 팰리스’ 궁전이 있다. 역시 온통 붉은 색인 궁전이다. 정원에서 들어가는 입구인 라젠드라문은 크지 않지만 정교하고 화려하게 꾸몄다. 

 



라자스탄의 하늘은 실로 맑고 푸르다. 건조한 땅이니 증발해 하늘로 올라가는 수증기가 없어 땅 위에 구름이 없고 맑은 하늘뿐이다. 아니, 구름이 없어 땅에 내리는 비도 없고 그래서 건조해진 것일까? 그 파란 하늘빛과 건물의 붉은 빛들이 더 강렬하게 대비를 이룬다.




문을 넘어 들어가면 모든 인도 왕궁마다 다 있는 건물 디와니암과 디와니카스가 나온다. 왕의 접견실이다. 건물 내부의 천장장식. 거대한 은항아리 등의 볼거리들이 있다. 



 

그리고 이제 궁전의 진짜 본 건물들이다. 역대 왕들이 썼던 물품들이며, 보물들, 그림들을 전시한 박물관도 있다.

 



아름다운 장식이 돋보인다. 우리로 따지면 단청이라 하겠다. 저런 문들이 여럿인데 하나 하나 장식 무늬가 다 다르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쇠문. 정교한 장식에 강한 햇빛이 비친 모습이 눈을 파고든다.




궁전 구경을 마치고 핑크 시티스러운 모습을 찾아 거리로 나선다. 거리는 정말 낡고 더럽다. 인도 최대의 관광도시라지만 인프라라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다. 그런 모습 자체가 이 도시를 찾는 외국인들에겐 볼거리겠지만. 




왜 핑크 시티가 되도록 색깔을 규정했을까? 


자이푸르를 지배한 카츠츠와하 왕조는 무굴과 경쟁, 공존하면서 버텼던 왕조다. 무굴에 이어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게 되자 역시 영국과 불가근 불가원 협력을 하며 생존을 모색했다. 그러던 도중 영국의 왕이 된 에드워드7세가 왕자 시절 자이푸르를 방문한다. 당시 자이푸르의 지배자는 온 도시를 붉은 색으로 칠하라고 명령한다. 붉은 색이 환영의 색이어서다. 그런 정성 덕분인지 자이푸르는 생존에 성공한다. 이후 도시는 붉은 색의 도시가 되었고, 이제 관광을 주수입원으로 삼은 지금은 붉은색 통일 규정이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실은 인도 어디를 가도 저런 붉은 색을 질리도록 만나게 된다. 인도의 전통건축물들은 모두 저 색깔 인도 사암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자이푸르처럼 화끈하게 저 색으로 통일된 도시는 없지만. 

 

그토록 보고 싶었던 건물, 그러나...

 

이 먼 자이푸르까지 오게 만들었던 건물로 향했다. 인도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 인도 이미지로 늘 쓰는 건물, 그 생김새가 너무나 독특한 건물, 자이푸르의 상징인 ‘바람의 궁전’부터 찾아갔다. 

 



자이푸르의 상징 ‘바람의 궁전’이란 뜻의 독특한 건물 ‘하와 마할’이다. 

어떤가? 정면 파사드 사진만으로는 거대한 밀라노 대사원의 앞면 못잖아 보인다. 그러나 옆에서 보면 실로 가느다란 종이짝같은 건물이다. 그리고 규모도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예상 이상의 허접함으로 실망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실망했다. 너무 사진으로만 저 건물이 익숙했던 탓이리라. 건축물이란 역시 직접 보면 다르다. 

 

하와 마할이 저 생김새인 이유는 뭘까. 마치 도시를 굽어보기 위해 지은 저 모습 말이다. 엄격한 남녀차별 시대 왕궁이란 좁은 공간에 평생 속박당해야 했던 왕실 여성들은 저 건물 창밖으로나마 바깥 세상을 바라봤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건물을 보면서 아름다움보다는 묘한 슬픔이 느껴지는 듯했다. 

어느 나라든지 다 똑같다. 저 옛날 왕실 여성들의 삶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