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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더 아름다운 그곳, 마니아 철학자와 찜닭이 사는 곳 2008/10/27

딸기21 2018. 9. 11. 17:13

문득 도산서원과 하회마을이 보고 싶었다. 회사 업무가 바뀌어 일에 좇기며 살다보니 가을 나들이 생각이 간절했다. 마침 친구녀석이 바람 쐬자고 연락을 해왔기에 ‘전통 한옥 스테이’ 체험을 권해 함께 가을 나들이에 나섰다. 


한번도 한옥에서 자 본 적이 없는 친구네 식구들과 함께 간 곳은 안동. 1박2일 일정으로 전통 한옥 체험을 주제로 정했다. 첫날은 도산서원을 돌아본 뒤 전통한옥인 치암고택에서 잠자고, 이튿날 하회마을을 돌았다.  


퇴계가 남긴 아름다운 선물, 도산서원


우리 가족에게 도산서원은 ‘엄마가 좋아하는 서원’이다.

나, 그러니까 ‘아빠가 좋아하는 서원’은 병산서원이다.


두 곳 모두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들이어서 한 번 나들이에 서로 다른 두 서원을 즐길 수 있다. 아기자기한 구성과 공간 배치가 귀엽고 아늑한 도산서원, 도산서원보다 크기는 훨씬 작아도 시원시원한 느낌에 기분이 절로 상쾌해지는 병산서원.


두 서원 모두 공통점이 있다. 퍼질러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기 좋은 것이란 점이다. 바로 그 맛에 서원을 가는 것 아니겠는가.




도산서원 가는 길은 가을 느낌이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군데 군데 홀로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눈길을 잡아끄는 입구 산책길. 옆으로 흐르는 강물이 바로 아래에서 넘실대야 정상인데 가물대로 가물어 강바닥이 벌판처럼 드러나 있었다.


잠시만 걸어가면 도산서원 앞 마당이다. 너른 마당 위 완만한 경사지에 포근하게 자리잡은 서원이 있다. 그런데 이 마당에는 서원보다 먼저 눈을 잡아끄는 것들이 있다. 바로 이 커다란 보호수다. 옆으로 파도치듯 자라난 모양새가 신기한 나무다. 무게 탓에 지지대를 놓았다.



저 멋진 나무 앞에선 도산서원 앞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수 있다. 바로 맞은편 강 건너에는 봉분처럼 독특하게 쌓아올린 시사단이 있다.



시사단은 ‘시험보는 선비들의 단’이다. 도산서원이 소유, 관리하는 이 독특한 구조물은 왜 만들었을까? 정조 때, 퇴계를 기려 이 곳에서 시험을 쳤는데 무려 응시자가 7000명 넘게 몰렸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단을 쌓은 것이다. 시사단을 보았으면 이제 도산서원으로 들어갈 차례다.


그런데 바로 입구에 있는 나무가 눈길을 끈다. 얼핏 보면 마치 네 그루처럼 보인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저 나무는 땅 속에서 네 갈래 줄기가 올라와 있다. 물론 나무 네 그루를 저리 심은 것은 아니다. 나무는 한 그루인데 땅 위로 아래 본 줄기가 묻혀있어서 저렇게 보인다.


저 나무가 저렇게 된 것은 이 곳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도산서원 성역화 사업을 지시했고, 그 때 서원 앞마당을 흙을 덮어 새로 꾸몄기 때문이다. 지면이 높아지면서 본디 앞마당 모습은 바뀌었지만 대신 너른 공간이 생겼다. 저 나무를 지나면 바로 도산서원 내부다.



도산서원은 언덕배기에 5단 계단식으로 위로 올라가며 자리잡고 있다. 서원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만나는 건물이 이 ‘농운정사’다.


농운정사는 그 생김새가 재미있다. ‘장인 공’자 모습, 그러니까 ‘工’ 모양으로 생겼다.


영어로 하면 H자 모습이겠지만 이 모양은 꼭 工자 모양이라고 해야 한다. 퇴계가 학생들 공부(工夫) 열심히 하라고 공자 모양으로 직접 설계했기 때문이다. 실제 건물은 무척 작은데 구조가 독특해 앞에서 보면 세칸 짜리인데 전체 칸수는 7칸이 된다. 그리고 구조상 창문이 무지하게 많다. 볼수록 재미있는 건물이다.


이 농운정사 방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원래는 담장 너머로 안동호 푸른 물이 보였다고 한다. 지금은 안보인다는 이야기다. 왜? 담장이 그 때보다 높아진 탓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성역화 사업을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담장을 보수할 때 그 때보다 더 높게 폼나게 지은 탓이라고 한다. 정성이야 좋았겠으나 모르면서 열심히하는 것은 꼭 문제를 낳는 법이다.


퇴계는 마니아였다, 그리고 건축가였다


농운정사를 봤으면 이제 그 다음 오른쪽 편 첫번째 건물, ‘도산서당’을 볼 차레다. 이름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도산서원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그런데, 이 건물 역시 농운정사처럼 자그마하다. 그래서 귀엽기까지 한 건물이다.



이 건물 역시 달랑 세칸짜리 미니 한옥이다. ‘초가삼간’이라고 할 때 그 삼간, 그러니까 세칸짜리다. 그래도 이 건물은 아주 중요한 건물이다. 이 도산서원 전체 여러 건물들 가운데 퇴계가 직접 설계한 건물은 농운정사와 이 도산서당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후학들이 나중에 지은 것들이다.


 


도산서당의 구조는 무척 단순하면서도 다른 건물과 다르다.


맨 왼쪽은 부엌 딸린 골방이고, 가운데가 중심이 되는 퇴계의 방이다. 맨 오른쪽 한 칸은 마루다. 지붕에 눈썹지붕처럼 덧대서 조금 더 길게 마루를 뽑았다. 한 칸 짜리 방에, 한 칸짜리 마루지만 따로 이름까지 있다. 사진속 현판이 작아 잘 보이지 않는데 마루 이름은 ‘암서헌’, 퇴계가 쓰던 방은 ‘완락재’라고 한다.


이 암서헌 마루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퇴계는 왼쪽 완락재 방 안에서 수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방 안에는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매화 화분들을 들여놓았다고 한다.


퇴계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매화였다. 그는 한마디로 매화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매화에 줄 좀 주라”는 말이었다. 말년 몸이 안좋아졌을 때에는 정결하지 못한 모습을 매형(=매화)에게 보여줄 수 없다며 매화 화분을 따로 치웠을 정도였다.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내 옆에 퇴계가 살아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라고. 아마 매화 화분을 정성껏 늘어놓고 물주고 쓰다듬으며 혼자 미소짓는 옆집 할아버지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퇴계는 요즘 말로 하면 ‘마니아’가 아니었을까?


조선 유학의 대표자로 주리론을 연구해 한국 성리학에 걸출한 족적을 남겼고 일본 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느니 어쨌느니하는 그런 재미없는 설명 속 이황은 왠지 가짜 이황처럼 여겨진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홀로 즐거워했을 순수한 사람이었으리라.


멋대로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나는 늘 퇴계에게 감사하곤 한다. 이 아름다운 나들이 코스 중 하나인 도산서원을 우리에게 남겨줬으니까. 천원짜리 속 인물? 주기론 사상? 그런 것은 몰라도 상관없다. 지금처럼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 도산서원 전교당 마루에 앉아 안동호의 물빛을 바라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바로 저 좁은 문 안쪽 방안으로 보이는 하얀 기둥 같은 부분이 매화 화분과 책을 올려놓던 지지대다. 담백한 하얀 벽과 세월의 느낌을 간직한 나무 기둥이 면을 분할한 모습이 미니멀리즘 회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도산서당은 작은 건물이지만 그 앞에 연못과 작은 문까지 거느리고 있다. 연못 이름은 ‘정우당’, 문 이름은 ‘유정문’이다.



유정문은 아주 작은 사립문, 그러니까 싸리문이다.



저 작은 연못과 귀여운 문은 퇴계란 인물의 소박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조선 최고의 학자로 전국에 명성이 높았건만 그는 검소하기 짝이 없었다. 그저 자기 한 몸 거처하면서 학생들이 찾아오면 가르칠 수 있는 세칸짜리 최소형 건물이면 족했다. 뒤로는 산을 지고, 앞으로는 말을 바라보는 풍경 속에 잠깐 자연을 빌어 머물다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저 작은 연못, 사람 한 명 드나들 낮은 문 사이를 거닐며 수업을 준비했을 선생님 퇴계를 생각해보라.


농운정사와 도산서당을 봤으면 이제 진도문(학교에서 자주 쓰는 ‘진도 나가자’는 말이 떠오르지만 한자가 다르다)을 지나 이제 진짜 서원 공간으로 들어간다.



가운데 길 위로 보이는 문이 진도문이다. 그 옆으로는 쌍동이 건물인 동광명실과 서광명실이 있다. 진도문을 지나면 서원 공간이 펼쳐진다. 가운데에는 서원 중심건물인 전교당이, 양쪽에는 양날개 구조로 배치되는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다. 



왼쪽 건물이 도산서원의 핵심인 전교당, 오른쪽 건물이 동재인 박약재다. 가운데 강학당인 중심 건물이 있고 그 앞 양쪽에 학생들이 기숙하는 동재와 서재가 있는 구조는 모든 서원 건물 공통이다. 서울 성균관대에 가면 그 오리지날, 가장 큰 모델을 볼 수 있다.


 


도산서원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만 봐도 이 건물이 이 서원의 대장임을 알 수 있다.


저 도산서원이란 글씨는 누가 썼을까? 명필의 대명사인 한호, 그리니까 한석봉의 작품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면 글씨가 좀 달라보일 수도 있다.


유명 건축물, 특히 한옥 건물에 가면 사람들이 마루에 올라가기를 꺼린다. 그러나 마루에 올라가도 되는 건물이라면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아니, 꼭 올라가 보길 권한다.


 


전교당처럼 마루가 개방된 한옥들은 그 마루에 앉아서 바닥도 손으로 쓰다듬어 봐야 한다. 그리로 마루에 앉아 주변 경치를 즐겨봐야 제대로 건물과 만나보게 된다. 마루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정교하면서도 시원하게 죽죽 뻗은 천장 구조물은 그 자체로 멋과 맛이 있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건물들은 또다른 포스를 지닌다. 오랜 세월 그 건물과 맺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연과 손길이 중첩된 느낌 그 자체다. 그 느낌과 교감해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건축물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산서원과 전교당은 반갑게 손님과 인사를 나눌 줄 아는 열린 건물이다. 올 가을 도산서원과 인사를 나누면 가을 단풍들이 빚어내는 부록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하회마을, 가을에 가니 또 다르네


둘째날 코스는 역시 하회마을. 처음 안동에 온 친구네를 위해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나 역시 여름에만 하회를 가봤기에 가을 하회마을을 보고 싶었다.  


안동에서 하회로 가는 길은 너른 논이 펼쳐진 벌판이다. 벼가 익은 요즘은 그야말로 황금빛 벌판이었다. 그 변함없는 시골길을 즐기며 드디어 하회마을 입구에 도착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설렘에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하회마을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그 사이 1킬로미터쯤 앞으로 주차장을 옮겼다. 입구에 크게 걸렸던 촌스럽던 영국여왕 방문 사진은 사라졌으나 대신 하회장터란 이름의 민속촌식 기념품점들이 마을과 주차장 사이에 들어섰다. 1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억지로 걷게 된 방문객들은 결국 셔틀버스를 돈내고 타게 된다. 지자체의 관광객 후려먹기 강박증이 실로 고약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이들이 한번 더 찾아오게 만드는 여운 마케팅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관광객들을 1회용 뜨내기 손님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또 눈에 거슬리는 것 하나.



하회마을 분위기에 맞는 마차 디자인까지는 아니어도 놀이동산에서나 어울릴 법한 이런 요란스런 마차라니. 실제 달리는 모습을 보니 더욱 안타까웠다. 이제 진짜 그냥 통과.


드디어 이제 진짜 하회 마을 입구다. 허수아비들이 줄지어서 손님들을 맞는다.



하회마을에서만 볼 수 있을 법한 보건소.



아직 한옥에 관심이 없는 편인 친구가 갑자기 궁금한 듯 가회동 한옥마을과 하회마을의 차이를 묻는다. 가회동이 좋다고 하나 20세기 들어서 지은 도시형 집장사 한옥들이어서 역사가 훨씬 오랜 이곳과는 단순 비교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이 돌아가는 절경에 자리잡은 하회마을 같은 정취는 다른 어떤 마을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점도.


가을 하회마을의 가장 도드라지는 특색은 가을에 더욱 예뻐지는 노랑색, 주황색이었다.



노란 국화꽃밭.



발간 감나무. 그리고 모과나무. 



사실 이번 하회마을은 건축 즐기기의 관점에선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지자체의 그악스런 욕심만 잔뜩 묻어나는 입구 정비는 오히려 별 것 아니었다. 모처럼 찾아갔는데 남촌댁은 공사로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양진당도 대규모 보수공사중이서 보고픈 한옥들은 거의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들이가 즐거웠던 것은 좁은 골목, 그리고 하회만의 독특한 풍경들 덕분이었다.



개인적으로 하회마을 최고의 공간 배치라고 생각되는 600년 묵은 신나무 가는 골목길.



앞쪽에서 오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몸을 움츠려야 할 정도로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가 길이 꺾어지면 갑자기 600년 묵은 거대한 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4년만에 본 산신나무는 온갖 소원을 둘레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골목을 보았으면 하회마을 외곽 순환 보도랄 수 있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걸을 차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이 곳은 하회에서 배놓을 수 없는 명소다. 그러나 가뭄에 물이 너무나 말라 바로 벤치 앞에서 넘실거려야 할 푸른 물결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소나무 숲. 소나무 실루엣 사이로 푸른 강물과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이 보인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내려가면 푸른 강물이 맞는다.



바로 이 풍경을 보고자 하회에 갔던 것이 아닐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그리 높을 수가 없었다. 가을은 살짝 찾아와 금세 가버린다. 그나마 올해는 가을을 볼 수 있었다. 그 작은 여유만으로도 만족해야만 하는 것일까. 팍팍한 일상은 늘 여유가 아쉽다.



팁1 :: 하룻밤 묵어볼만한 괜찮은 한옥-치암고택


안동을 목적지로 고른 것은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못잖게 한옥 체험 때문이었다. 이번 안동행에서는 늘 묵었던 수애당 대신 이번에는 치암고택을 골랐다.


경치가 좋고 건물도 좋은 수애당이 아니라 치암고택을 고른 것은 치암고택의 내력이 맘에 들어서였다.


치암고택은 치암 이만현이란 분의 집이다. 호가 독특한데, 치암의 치 자가 부끄러울 치(恥)자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데 분개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그는 선비들이 제대로 못해 나라를 빼앗기게 된 것을 부끄럽게 여겨 호를 이렇게 고쳤다고 한다.


건물은 단순하고 정갈한 구조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고, ㅁ자 모양 집이 있다. 그런데 이 집 모양이 무척 독특하다. 양쪽 지붕 형태가 다르다. 그리고 사랑채가 안채보다 단이 높다. 보통은 사랑채가 앞쪽에 있어 단이 낮고 뒤에 있는 안채가 경사가 더 높은 곳에 위치해 단이 높은 것이 보통이다. 이 집은 거꾸로다. 왜 그런지 물었으나 주인도 똑떨어지는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윗쪽 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지붕 왼쪽은 맞배지붕, 오른쪽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이런 구조 건물은 부석사에서도 볼 수 있긴 하지만 앞쪽이 팔작, 뒷쪽이 절단면처럼 맞배인 전후 구조 배치였을 때다. 반면 이 건물처럼 옆으로 날개를 펴듯 펼쳐진 건물에서 이렇게 지붕이 다른 것은 드문일이서 흥미로웠다.


여행정보 차원에서 치암고택을 소개하자면 무척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우선 안동 시내에서 가깝다. 그래서 돌아다니기도 좋았다.


우리 일행은 2가족 7명이어서 사랑방을 빌렸는데 큰 방 하나에 중간 벽을 설치해 2개짜리 방으로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옆 마루까지 딸려 쓸 수 있어 사실상 3칸을 빌린 셈이었다. 마루는 동행들과 간단하게 음주를 하기에 아주 제격이어서 방값 10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분위기와 깨끗함, 편의성 등의 면에서 하회마을 안에서 민학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할 만했다.


팁2 :: 안동 대표 음식 3가지 - 헛제사밥, 안동갈비, 그리고 찜닭


안동에 오면 꼭 즐겨야 할 것으로 한옥 체험 말고 안동 음식들이 있다. 이번에 안동을 처음 찾아온 친구네를 위해 안동 음식으로 세 끼를 찾아다녔다.


역시 처음 먹어야 할 것은 안동만의 음식 대표격인 ‘헛제사밥’. 헛제사밥은 쉽게 말해 비빔밥인데 고추장으로 비비지 않는 비빔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담백한 웰빙음식이다.


이름이 독특한데, 제사밥을 즐겨먹던 유생들이 제사밥이 먹고 싶어 진짜 제사도 아닌데 헛제사를 지어 밥을 차려먹어 헛제사밥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가 간 식당은 헛제사밥집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까치구멍집. 입맛이 변한 것인지 예전처럼 맛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상차림은 이렇다.



다음은 경북 지역에서 즐겨 먹는 상어고기 반찬. 그리고 안동의 별미인 안동식혜.


왼쪽 사진 접시에서 하얀 고기가 상어고기다. 담백하고 졸깃한듯 푸석한 듯한 독특한 씹는 맛이 매력이다. 



오른쪽은 안동 식혜. 김치국물 같은 맛이려니 상상하기 쉽지만 전혀 다른 맛이다. 처음 먹을 때에는 이상해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해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안동에 오면 왠지 꼭 먹어줘야 할 것 같아 한번씩 맛보곤 한다.


안동에 도착한 첫날 점심을 헛제사밥으로 해결하고 도산서원을 본 뒤 찾아간 저녁 식사 장소는 안동 시내 중심가에 있는 유명한 음식점 ‘문화갈비’. 유명 식당이라고 해서 커다란 식당을 생각하면 큰일 난다. 한 3~4 팀이 오면 다 차는 작은 식당이다.


이 집의 ‘포스’는 일단 메뉴에서 느낄 수 있다. 메뉴가 달랑 2가지. ‘갈비 1인분 1만7000원’, 그리고 ‘공기밥 1000원’ 단 두줄 뿐이다. 실제로는 메뉴가 한가지 뿐인 셈이다.


안동은 지역 한우를 내세우는데 그래서 고기요리를 잘한다고 자부심이 강하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안동찜닭의 경우 오히려 안동에서는 근래에 생긴 요즘 음식이고, 진짜 안동 음식은 한우고기라고 하는 이들도 많다.


문화갈비는 이 안동한우집들 가운데 유명한 집인데, 이집 갈비만의 특징은 ‘달지 않은 양념갈비’란 점이다. 조명 탓에 사진이 별로라 식감을 자극하지 못해 죄송한데 그래도 일단 한 컷 보시길.



처음 갈비 한 점을 입에 넣으면 어딘가 이상하다. 양념갈비인데 단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탓이다. 그러나 더 먹다보면 단맛에 질리지 않아 훨씬 더 많이 먹게 된다. 좀 더 강한 맛을 느끼고 싶으면 같이 나오는 소스에 고기를 찍어 먹으면 된다.


두쨋날 메인 메뉴는 역시 안동하면 떠오르는 ‘찜닭’을 골랐다. 안동에는 시장이 2곳인데 신시장과 구시장이다. 이 중 구시장에 ‘찜닭 골목’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입구쪽에 있는 ‘매일찜닭’ 집으로 갔다. 바로 옆 유진찜닭과 현대찜닭도 평들이 좋았는데, 그래도 원조라고 해서 찾아갔다. 처음 가게를 연 분은 돌아가시고 지금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먹어본 찜닭의 맛은 괜찮았다. 일단 그 양이 상당히 푸짐한 편이었다. 커다란 쟁반 접시에 가득 담겼는데 그릇 크기는 서울과 비슷하나 닭의 양이 많았다. 매운 맛이 좀 있어 아이들에겐 후라이드를 시켜주는 것이 나을 듯했다. 닭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