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가구의 세계

맨홀을 보면 사회가 보인다 2008/06/08

딸기21 2018. 9. 7. 15:11

단군 이래 처음으로 맨홀뚜껑 때문에 인생의 위기를 맞은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맨홀을 훔치다 잡힌 것도 아니고, 맨홀 훔치지 말라고 했는데도 수렁에 빠졌습니다. 

맨홀 도난을 촛불집회와 연관시켰다가 치명타를 맞은 방송인 정선희씨 이야깁니다. 


맨홀, 과연 많이 훔치나?-맨홀에 담기는 사회


이번 글은 촛불집회와 얼떨결에 연결된 맨홀, 그 자체에 대한 이야깁니다. 이 글에선 정선희씨의 말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일체 다루지 않는다는 것부터 말씀드리고 시작합니다. 


정선희씨는 22일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자전거 도난 사연을 전하다가 “광우병이다 뭐다 하면서 애국심을 불태우며 촛불집회를 해도 환경을 오염시키고 맨홀 뚜껑을 퍼가는 일 등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그렇게 맨홀뚜껑을 사람들이 많이 훔쳐는 가는 걸까요?

 

네, 안타깝게도 그런 모양입니다. ‘그 무거운 맨홀을 훔쳐다 뭐에 쓰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텐데, 하도 많이 훔쳐가서 최근 맨홀에 이름을 써놓는 ‘맨홀 실명제’를 도입하는 지자체까지 생겼습니다.

 

사진=중앙일보


 

수성구청은 최근 고철 값이 뛰면서 맨홀 도둑질이 늘어 이렇게 큼직하게 수성구청 건설과 것이라고 써놓고 있습니다. 맨홀은 다른 철재와 달리 잘라낼 필요가 없이 그냥 가져 갈 수 있는 것이 도난이 잦은 이유랍니다. 고철 값이 킬로그램당 400원 정도이므로 140킬로그램 정도인 맨홀 뚜껑을 훔쳐다 팔면 5만원 넘게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도둑질에 질린 행정관청에서 저렇게 화끈하게 이름을 써서 훔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동시에 고물상도 매입을 꺼리게 만들자는 전략을 편 것입니다. 저 수성구의 방안을 옆에서 지켜본 대구 남구는 아예 관리 전화번호까지 집어넣는 맨홀뚜껑을 설치하기로 계획을 세웠을 정도라고 하니 예상 이상으로 맨홀 뚜껑 도난이 많은 모양입니다.

 

저 맨홀뚜껑 도난 방지책을 보면 씁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맨홀뚜껑을 훔쳐가는 현실 자체가 지금 우리 사회의 수준과 실상을 반영하고 있으니까요. 

 

사소한 것 같지만 거리가구들은 그 시대를 정확히 담아냅니다. 

먼 훗날 사람들은 저 맨홀을 보고 말할겁니다. 2008년, 고철값 벌려고 맨홀을 훔쳐대던 시절이었다고. 그리고 그 해 한 연예인이 맨홀 도둑질에 대해 잘못 말했다가 크게 비난받았다고.

첨단 디지털 세상에도 좀도둑은 날뛴다는 것을 맨홀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맨홀, 거리의 숨은 얼굴-맨홀도 관광경쟁력

 

그러면 맨홀 자체를 좀 들여다봅시다.

이 맨홀처럼 거리에 놓여있는 공공 기물을 ‘거리 가구’(street furniture)라고 한다는 것은 이 블로그를 자주 오시는 분들은 익히 들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 블로그가 거리 가구에 대해 말하고자 만든 것인만큼 이번 글에서는 거리가구로서의 맨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맨홀은 예상 이상으로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구 수성구에만 맨홀이 몇개나 있을까요? 무려 8400여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맨홀은 그 숫자도 어마어마하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저렇게 구청에서 관리하는 것도 있지만 케이티 맨홀, 도시가스 맨홀 등 관리주체별로 각각 맨홀을 설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맨홀들의 디자인은 어떻습니까? 

거리 가구로서 가장 많은 것 중 하나이므로 이 맨홀이 예쁘면 도시도 예뻐질 것이고, 맨홀이 정나미떨어지게 생겼다면 거리 분위기에도 좋지 않을겁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이 맨홀에 제법 신경을 씁니다. 

 

일본에 여행을 다녀오시는 분들을 보면 예상외로 많이 맨홀을 찍어 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일본은 맨홀을 다양하고 개성있게 만드는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다보니 특히 눈에 잘 보이고, 그 맨홀이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카메라로 찍게 되는 것이죠. 이는 일본을 다녀간 서양 관광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번만 해보면 일본 맨홀을 찍은 수많은 사진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번 보시죠.




일본은 지자체별로 각 지역의 상징이나 문화를 반영하는 디자인으로 맨홀을 꾸밉니다. 

사진 위 왼쪽 사진을 보면 일본의 유명 만화로 국내에서도 남녀노소 막론하고인기높은 만화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 코난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맨홀은 <코난>의 만화가 아오야마 고쇼의 고향에 있는 맨홀이라고 합니다. 자기 고장 유명 만화가 작품을 맨홀에 활용한 것이죠.

 

이런 일본식 맨홀은 보기 예뻐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 유치하고 과다한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일본 특유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인터넷에서 퍼온 일본 맨홀들 조금 더 소개합니다.

 


 

만화풍의 컬러 맨홀이 아니라도 다양한 이미지들을 집어넣어 볼거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서양 맨홀은 어떨까요?  

인터넷으로 뒤져보니 서양 맨홀들은 일본처럼 지나치게 꾸밈이 강하거나 색깔을 집어넣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역시 디자인에 제법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맨홀 사진들을 모아봤습니다. 



또다른 서양 맨홀 들입니다.

 


맨홀은 이처럼 도시의 또다른 숨은 얼굴입니다. 맨홀 자체가 대단한 미적 아이콘은 아니어도 괜찮고 보기 좋으며 재미있는 맨홀이 많아질 때 도시는 더욱 거닐기 좋아질 겁니다. 실제 이런 점 때문에 디자이너들 중에는 맨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디자이너로 꼽히는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맨홀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는 아닙니다.

 

도대체 이 녀석은 뭐냐구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회사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지브리미술관에 있는 녀석입니다. 정식 맨홀뚜껑이라고 보기는 뭐하지만 그 모양이 예뻐 이곳에 가는 분들은 꼭 찍어오는 인기 아이콘 중 하나입니다. 저런 디자인 맨홀뚜껑이 거리에 있으면 무척 재미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럼 대한민국 맨홀은?

 

아직 우리 맨홀은 천편일률적인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색깔도 그냥 재료 쇳빛 그대로인 것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맨홀에도 조금씩 컬러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컬러풀해지긴 했는데 이렇다는 점입니다.

 



분명 색깔이 들어가 화사해졌고, 디자인도 찬반 양론은 있겠습니다만 일단 달라지려고 하는 흔적이 느껴집니다. 아쉬운 점은 저 맨홀에 새긴 글귀입니다. 

 

맨홀은 그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이 드나늘기 위한 구멍입니다. 맨홀에 사람이 들어가게 되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을 때가 많겠죠. 관리 주체로서는 맨홀 위에 차를 세워놓을 경우 중요한 작업을 못하게 되므로 ‘주차금지’를 가장 알리고 싶을 듯 합니다. 하지만 보는 입장에선 그렇게까지 읽고 싶은 아름다운 글자는 아닐 겁니다. 

 

맨홀을 조금씩 더 좋게 만들고자하는 지자체들의 노력은 칭찬할만 합니다. 다만 너무 공급자 중심의 시각이 드러나는 글귀보다는 다른 방식도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맨홀 뚜껑 디자인의 고전, 어디서 온 것일까?

 

비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나 아직 우리 맨홀들은 보기에 예쁜 수준에는 못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맨홀 디자인을 무척 좋아합니다. 단순하고 간단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된 디자인이고 그래서 많이 친숙한 ‘검증된’ 디자인이니까요. 위의 저 사진속 저 맨홀은 옛 서울시 마크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디자인은 지금도 여전히 가장 많이 쓰입니다. 그리고 지방에서도 저 디자인 맨홀들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저 디자인은 디자인 자체로는 현란하지 않아도 아주 잘 만든 물건답다고 할까요, 그런 맛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맨홀은 차분하면서도 고전적인 저 디자인을 지니고 있다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곳에서 저 디자인 맨홀이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책에서 였습니다.

 



이 일본 만화의 표지에 저 디자인의 맨홀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럼 이게 우리나라만의 디자인이 아니었단 말인가? 일본 맨홀을 베꼈단 말인가? 아니면 일본이 우리 맨홀을 베낀 것인가...’

궁금해져서 일본 맨홀을 뒤져봤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서도 저 맨홀은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일본말고 혹시 또 다른 나라도 이 맨홀 디자인을 쓰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봤습니다. 그 결과 독일에서도 저 맨홀 디자인을 쓰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 맨홀 디자인은 예상을 깨고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맨홀 디자인의 고전이자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검증된 스테디셀러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저 디자인은 어떻게 처음 쓰이게 된 걸까요? 

궁금합니다만 아직 그 답을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 좀 들려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