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친해지기

천년 넘게 한국을 지킨 자이언트 부처 이야기 2008/05/26

딸기21 2018. 9. 5. 14:27

한국 최장신 부처님은?


잠깐 퀴즈부터. 

부처님들 가운데 가장 키가 큰 부처님은 어떤 부처님일까요?


사진이나 실물로 봐왔던 불상들을 한번 머리속으로 떠올려 보시면 답이 나올겁니다. 바로 ‘미륵불’입니다.


사실 부처님은 무척이나 많습니다. 원래 부처님은 석가여래뿐이었지만, 불교가 여러 나라로 퍼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처님과 보살님이 생겼습니다. 미륵불도 그 중 한 부처님입니다.


그러면 미륵불은 어떤 부처님일까요.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이 된 뒤 56억7000만년 뒤에 다시 내려와 용화세상을 만드는 부처님입니다. 내려와서 설법하는 모습을 불상으로 만들어 서있는 불상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불상이 키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아산 신현리 미륵불(왼쪽)과 논산 송불암 미륵불. 둘다 우뚝 서있는 미륵불이다.



우리가 미륵불하면 떠올리게 되는 관촉사 은진미륵은 그 키가 18미터이고, 서울 시내에서 만날 수 있는 미륵불인 삼성동 봉은사 미륵대불은 더 커서 20미터도 넘습니다.


하지만, 역시 미륵불의 간판스타는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금동미륵대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키가 자그마치 33미터나 됩니다. 거의 12층짜리 아파트 높이입니다. 당연히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세계에서 가장 큰 미륵불로 꼽힙니다. 


관촉사 은진미륵(왼쪽)과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법주사 미륵불은 오랜 세월 동안 재료가 바뀌어가며 만들어진 독특한 뒷이야기를 지닌 불상으로도 유명하다. 무게는 무려 160톤으로, 금도금에 들어간 금이 80킬로그램이었다.


이 미륵불들은 보통 야외에 놓입니다만, 간혹 건물 내부에 봉안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미륵불이 키가 크니, 자연스럽게 건물도 높이가 2층, 3층짜리로 높아지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건물이 바로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 중요 건축문화재로 배워온 전북 김제 금산사의 미륵전입니다. 


금산사 미륵전은 높이 11미터에 이르는 미륵삼존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물도 15미터 높이의 3층짜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우리나라 옛 나무 건물 중에서 3층짜리는 놀랍게도 이 건물 뿐이랍니다. 예전에 쌍봉사 대웅전이 있었습니다만 화재로 그만 홀랑 타버려 새로 지었고, 법주사에 팔상전이 있지만 5층짜리이고 또 목탑이라 봐야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옛 건물들은 대충 다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 다들 비슷비슷하지 않느냐 싶지만 의외로 3층 건물은 없습니다. 그래서 금산사 미륵전은 국보 62호 중요한 우리 문화재가 되어 교과서에 실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미륵전은 이 땅에서 꽃핀 미륵신앙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금산사 미륵전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늘 가보고 싶었는데 모처럼 전주에 들렀다가 시간을 냈습니다. 다른 절들과는 다른 금산사의 분위기와 빼어난 건축물인 미륵전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나들이였습니다. 


금산사는 모악산에 있습니다. 일주문 지나 금강문 지나 천왕문 지나 해탈문으로 이어지는 금산사 가는 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장중합니다. 네개의 문을 하나 하나 올라가는 길에서 그만큼 크고 오래된 절이란 것을 절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새로 지은 티가 강한 해탈문을 지나니 드디어 금산사 경내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금산사의 첫 느낌은 ‘넓다’입니다. 정말 너른 마당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집니다. 다른 절 같으면 앞 마당에 석탑이며 다양한 구조물들이 군데 군데 자리잡고 있을 텐데 금산사에는 그런 것이 없고 확트인 공간뿐입니다. 그 공간 너머 멀리 커다란 세 덩어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금산사를 대표하는 세가지 건축물들입니다. 사진 왼쪽부터 대적광전, 계단처럼 쌓은 송대, 그리고 바로 미륵전입니다. 


극적인 내부, 신음하는 외부-미륵전 


금산사에 들어오며 바라보는 시선상에는 대적광전이 중심에 위치하지만, 역시 금산사의 주인공은 미륵전입니다. 둔중한 듯 날렵하면서도 당당한 삼층 건물이 눈길을 끌어당깁니다.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중창한 유서 깊은 목조건물입니다. 




미륵전은 겉에서 보면 3층이지만 내부는 하나로 뚫려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위로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으로 터져 있고, 거대한 미륵삼존불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천장에서 들어온 빛이 미륵불의 얼굴에 비쳐 묘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한국 전통건축물들 가운데 내부 공간 연출이 극적인 사례로 늘 손꼽히는 건물이 미륵전입니다. 


미륵전에 모신 미륵불은 내부 촬영이 안된다고 하여 사진을 찍지는 못했는데, 전문가들은 그냥 평범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편이었습니다. 원래 있던 미륵불은 언젠가 사라졌고, 다시 만든 미륵불은 일제시대 불타버려서 20세기에 다시 만든 미륵불입니다. 


내부를 구경한 뒤 나와서 이제 건물을 차근차근 음미할 차례입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건물을 바라봤을 때 왼쪽 큰 기둥이었습니다. 나무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살려 나무 특유의 볼륨감과 자연미가 잘 살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한국 건축의 자연스런 맛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거대한 미륵전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 기둥을 보고 흐뭇해진 마음으로 건물 벽으로 돌아서는 순간, 황당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륵전 벽에는 관광객들이 써놓은 낙서들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아마도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왔던 학생들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은 낙서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한쪽 벽면 전체를 저렇게 표면을 긁어낸 낙서가 뒤덮고 있었습니다.


낙서를 보고 불편해진 속은 금산사를 떠날 때까지 편안해지지 못했습니다. 낙서로 신음하는 미륵전의 모습은 숭례문이 불 타는 현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수준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보물이 곳곳에 널려 있는 절 


빨리 눈길을 돌리고 금산사의 구석구석을 돌아봅니다. 금산사에서 놀란 것은 이 절에는 미륵전말고도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점이었습니다. 미륵전 바로 옆에 조성된 송대를 보시겠습니다. 




저 송대는 방등계단과 5층 석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 모습은 미륵불이 계시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방등계단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방등계단을 지나 금산사 마당으로 내려오면 역시 드문 모양의 각종 유물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이 석탑을 보시죠.




저 석탑은 키가 2미터18센티미터 짜리 작은 탑입니다. 실제로 보면 더 아담하고 귀엽습니다. 하지만 저 모양이 무척이나 특이한 것에서 짐작하셨겠듯 무척이나 드문 문화재입니다. 만들어진 시기도 고려시대 초기로 여겨지는 오래된 유물입니다. 그래서 보물 27호로 일찌감치 지정된 작지만 소중한 탑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금산사에서 제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건물이었습니다. 




처음 보면 그냥 작고 아담한 전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정말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지붕 용마루에 왠 통이 봉긋 솟아나 있습니다. 


저 건물은 금산사 대장전입니다. 역시 보물로 지정된 만만찮은 건물입니다.


그러면 저 솟아있는 뾰족한 것은 뭘까요? 바로 저것을 놓고 건축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논쟁적 건물’이 이 대장전입니다. 저 뾰족한 구조물 때문에 이 건물은 탑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원래 있던 탑을 옮겨 집으로 모양을 바꾸고 저 뾰족한 끄트머리를 올려놓은 것이란 의견도 있습니다만, 그 정확한 이유는 아무로 모른답니다.


진표의 꿈, 견훤의 비운이 서린 미륵신앙의 본산


금산사는 미륵전만 있는 절이 아니었습니다. 여기 저기 돌아보면 범상치 않은 것들이 곳곳에 놓여있는데 하나 같이 국가의 보배들인 절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문화재가 있는 유서깊은 절도 드물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산사의 분위기는 화려하고 장엄하기 보다는 휑뎅그레하고 스산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 절이 오랜 세월 겪어온 역사의 부침이 지금 금산사의 모습과 분위기에 배어있기 때문일 겁니다. 


금산사는 원래 자그마한 절이었습니다. 이 절을 나라를 대표할만한 큰 절로 중창한 이는 진표율사였습니다. 진표는 미륵신앙을 이 땅에 널리 퍼뜨린 주인공입니다. 그는 금산사말고도 속리산 법주사도 중창했습니다.


금산사에서 수행한 진표는 762년 금산사에 미륵상을 세우고 건물을 지어 절을 새로 세우다시피 합니다. 나라 잃은 옛 백제의 백성들은 미륵신앙으로 패망의 설움을 달래는 한편 새로 일어서는 용기를 다졌습니다. 금산사는 진표의 바람대로 미륵신앙의 본산이 됩니다. 


하지만 금산사에서 떠올리게 되는 역사 인물은 역시 진표보다는 후백제를 세운 희대의 풍운아 견훤이라고 하겠습니다. 후백제 세운 뒤 견훤은 전주를 서울로 정합니다. 그리고 전주 부근인 이 금산사를 원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곧 금산사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견훤이 왕위에서 밀려나 금산사에 감금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를 몰아낸 장본인은 그가 평생 맞섰던 적들이 아니라 그의 피붙이인 맏아들 신검이었습니다. 왕위 계승 문제로 아버지와 충돌한 신검은 견훤을 금산사에 가둬버립니다. 자기가 중흥한 절 금산사에 갇힌 견훤은 피눈물을 흘리다가 석달 만에 탈출합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배신당한 아버지는 이미 전장을 누비던 영웅의 모습을 잃고 서글픈 노인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견훤은 자신의 적이었던 왕건에게 투항해 버렸고, 후백제도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금산사의 진짜 전성기는 견훤의 후백제가 아니라 불교를 우대한 고려에 이르러 찾아왔습니다. 금산사 너른 부지에는 수십동의 건물이 즐비하게 지어졌습니다. 그 뒤 몇 백년을 이어지던 금산사의 영화는 임진왜란으로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국난에 힘을 합친 승병들이 금산사로 모여 전투를 벌였고, 전란 속에 금산사는 거의 절 전체가 불타고 말았습니다. 1601년부터 오랫 동안 복원 작업을 벌였지만 예전 모습의 일부만 되살리는 데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금산사의 저 휑하니 넓은 공간은 있었던 것들이 사라진 허망함을 잘 보여줍니다. 원래부터 없던 것들을 일부러 마구 새로 지어 절의 분위기를 망쳐버린 수덕사나 해인사와는 정반대라고 하겠습니다. 


금산사에서 꽃피기 시작한 미륵신앙은 힘들고 괴로운 현실 속에서 개혁을 바라는 민초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이라도 꿔보게 만드는 동반자였습니다. 미륵불이 여는 용화삼회 설법으로 구제받기를 바라는 백성들의 꿈이 미륵신앙에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100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산업화 시대, 미륵신앙은 그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아직껏 우리 문화유산들 속에 남아 전하는 미륵신앙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금산사의 저 웅장한 미륵전은 백성들의 염원이 서린 미륵신앙의 유구한 역사를 증거하고 있는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낙서로 덮인 미륵전을 보는 마음은 그래서 씁쓸하기만 합니다.